일기 (32) 썸네일형 리스트형 3. 정신건강의학과 첫 방문과 상담 1편: 노력이란 무엇일까? *성인ADHD의 특성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 많은 매체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개인의 기록임을 밝힙니다. 잔뜩 신이 나서 집 주변 정신과를 검색해 봤다. 남은 시간은 고작 4주. 유명한 병원을 찾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나는 경기도의 끝자락 지방러인데, 우리 집 근처에도 정신건강의원이 꽤나 많아서 놀랐다. 우선 나는 모든 병원의 소개글이나 후기를 보고 확실히 성인 ADHD를 진료하는 병원을 추렸다. 그러고 나니 후보가 몇 개 남지 않아 후기를 좀 더 찾아보고 친절하다는 곳으로 또 한번 추렸다. 남은 후보는 단 둘. 두 군데 모두 전화를 해봤다. 정신과 예약은, 나처럼 마음이 급하고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진입장벽이 꽤 높았다. 우선 두 곳 모두 예약이 꽉 차 있는 상태였고, 더군다.. 2. ADHD를 검색해 볼 수록 오히려 기대감에 부풀었다. *성인ADHD의 특성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매체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개인의 기록임을 밝힙니다. ADHD를 가진 사랑스럽고 안타까운 금쪽이를 보고, 나는 홀린 듯이 ADHD에 대해서 찾아보게 되었다. 정보의 홍수 속을 한참 표류하다 내가 정착한 곳은 서울아산병원의 질환백과(링크)였다. 여기에서 성인 ADHD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정리정돈을 못한다는 부분만 빼면 전부 다 나의 증상과 일치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깊은 부분은 마지막에 소개한 "성인 ADHD 환자에게 유용한 습관" 다섯가지였다. ① 메모가 가능한 노트나 수첩, 스마트폰을 항시 휴대합니다. ② 주변에 휴지통과 정리함을 여러 개 배치합니다. ③ 열쇠, 전화기, 지갑 등의 물건을 담는 보관함을 항상.. 1. ADHD를 알게 된 건, 매우 공교로웠다. (금쪽같은 내새끼) *성인ADHD의 특성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 많은 매체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개인의 기록임을 밝힙니다. 11월 초, 한국에 오랜만에 방문했다. 5주간 한국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이후 4주 동안은 휴가를 내서 노는 총 9주간의 일정이었다. 나는 심리적으로 매우 안정된 상태였다. 혼란하던 10대와 20대를 겪고 직장을 다니며 삶을 안정시키고 나니 나 자신을 좀 더 들여다 보게 된 덕에 30여년간 나를 괴롭히던 무기력함과 의지박약, 자기비하와 나태함, 열등감, 게으름 등을 나름대로 잘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30대가 되면서 좋던 싫던 나라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상태였다. 게다가 한국에 갔을 때는 마침 큰 규모의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인생을 바꿔놓은 열 다섯의 유럽 여행. 엄마는 외국생활을 동경했다. 그래서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가장 친했던 친구가 필리핀으로 유학을 갔다. 그땐 잘 몰랐는데, 1년후 방학때 한국에 잠깐 들어온 친구한테 얘기를 들어보니 너무 재밌고 신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당시 그 친구는 교회를 통해서 필리핀 현지 교회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에 들어가서 기숙사비도 저렴했고, 당시 필리핀 물가도 굉장히 저렴했기 때문에 학비를 포함해서 총 생활비가 한달에 70만원밖에 들지 않는다고 얘기해줬다. 나는 당장 엄마한테 달려가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엄마한테 들은 답변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우리 집은 너 유학 보낼 만큼의 형편은 안되는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네가 벌어서 유학가는 건 어떨까?" 한 달에 70만원의 학비도 댈 여력이 없.. 108배 한달 후기 - 식단조절 안하고 다른 운동도 하지 않고 순수하게 108배만 한 달동안 해 봤다. 108배를 시작한지 어느덧 33일차. 108배 한달 후기를 써보려고 한다. [조건] 주말에는 쉬고, 평일 아침에 진행 식단조절 하지 않음 다른 운동 병행하지 않음 일상의 모든 조건이 동일하고 오로지 108배만 추가됨. [바뀐점] 몸의 중심 근육이 확연하게 자리를 잡음. 넘어짐이 확실히 줄고, 중심잡기, 통나무건너기, 오래 서있기 등의 능력이 월등히 향상됨. 생리통 체감 90% 감소 생리 전 여드름 체감 90% 감소 요통 체감 90% 감소 확실한 체력 향상 몸무게 변화 없음 약간의 체지방 감소, 약간의 근육량 증가 [감상] 나는 원래 매일 쾌변을 보는 사람이라 확 느껴지는 변화는 없지만, 다른 후기들을 찾아보니 변비나 치질에도 굉장히 좋다고 한다. 장운동이 좋아진 듯한 느낌은 드는데 나는 원래 규칙적으로 .. 프로바이오틱스 대신, 아침엔 오버나이트 요거트 오트밀 - 타임지 선정 슈퍼푸드의 진실 '10대 슈퍼푸드로 아침먹기' 라고 제목을 써놓고, 그래도 질 좋은 정보성 글이 되려면 10대 슈퍼푸드가 무엇인지는 적어야 할 것 같아서 기사 검색을 시작했다. 그런데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 10대 슈퍼푸드'의 원문 기사는 아무리 검색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 어디서 주워듣긴 했는데.. 내가 찾은 글들은 죄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블로그나 작은 온라인잡지의 기사들 뿐이었다. 영어로 검색을 시작했다. 역시 원문 기사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superfood'로 검색해봤다. 놀랍게도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슈퍼푸드를 'marketing term'이라고 써 놓았다. 그런데 위키피디아를 신뢰할 수는 없으니까 기사 검색을 시작했고, 설명이 될 만한 몇개의 기사를 찾았다. 그 중에서도 'Harvard .. 다큐후기/누설없음) 넷플릭스 나의 문어 선생님 - 환상적인 케이프타운의 바다와 아름다운 우정. 사실은 한 3주 전에 보고 후기를 써야지 하면서 미루고 있다가 며칠전 아카데미에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상을 수상하고서야 부랴부랴 후기를 작성중이다. 주변에 추천은 많이 했었는데. 아무튼 내용 누설 없이 초반 상황만 설명하고 간략한 감상을 적는 후기.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인 주인공은 일에 지치고 회의감을 느껴 그가 나고 자란 고향집으로 돌아온다. 이건 무슨 듣도보도 못한 바다수저란 말인가. 첫번째 사진 맨 아랫쪽 집이 그의 집이다. 저런 곳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면 대체 어떤 느낌일까? 주인공이 다큐멘터리 감독이 된 것은 그래서였을까? 내가 꿈꾸는 이상향이 이 곳에 다 있었다. 푸른 물, 자연, 고즈넉함과 때때로 찾아오는 위대한 자연의 거친 격정. 이런 집이 있어서인지, 일과 인간관계에 지친 주인공.. 아이패드 프로 실사용 후기 - 내 생애 최악의 소비, 활용도에 대한 고찰. * 이 글을 읽는 분께, 제발 저와는 다르게 실제 용도를 잘 생각해보시고 구매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내가 부모님께 딱 하나 물려받지 못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건 현명한 소비 습관이다. 그래도 지난 10년간 열심히 벌고 열심히 써 본 결과 하나 깨달은 것은, 자잘한 소비를 아껴서 통 크게 지르는 것이 더 오래 쓰고 만족도가 크다는 것.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큰 마음을 먹고 원대한 계획을 앞세워 지른 아이패드가 내 생애 최악의 소비가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정말 몰랐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광고회사에 재직중인 아트디렉터다. 나는 만화를 그렸었고, 앞으로도 그릴 예정이 있으며, 유튜브 영상도 만들어 봤고, 앞으로도 만들 생각이 있다.. TV후기) 유퀴즈 청년문간 이문수 신부님 210421 유 퀴즈 온 더 블럭 103회 시청 후기. 오늘의 유퀴즈는 '은밀한 이중생활' 특집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고 마음에 콱 박힌 출연자분은 청년문간을 운영하시는 이문수 신부님이었다. 2015년 여름 대학로 고시원에서 생활고와 지병에 시달리다 굶주림 끝에 세상을 떠난 청년의 기사를 본 한 수녀님께서 "청년들이 마음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고, 그걸 이문수 신부님이 수도원에 건의하시자 '너무 좋은 생각이다. 그럼 네가 하라'며 맡게 되셨다고 한다. 그렇게 2년간의 준비 후 정릉에 '청년문간'이라는 식당을 여셨고, 차림표는 김치찌개 단 하나, 가격은 3000원이다. 인원수대로 시키지 않아도 되고, 밥도 추가요금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수익사업도 .. 글 쓰며 떠돌이로 살면 행복할까? - 광고 아트디렉터가 된 이유 우리 엄마는 60년대생이시고, 정부가 해외여행을 자유화한 것이 겨우 83년도였다. 그래서였는지 우리엄마는 외국을 돌아다니며 사는 것이 멋있지 않냐고 어린 내게 반짝거리며 말씀하셨다. 엄마의 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도 엄마를 닮은 걸까 하여간 나도 대충 중학교때쯤 부터 막연하게 외국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광고 아트디렉터가 되었다. 영어와 작업물만 갖춰진다면 세계 어디서든 일할 수 있으니까. 처음 내 목표는 20년간 10개국에서 일하면서 살아보는 거였다. 그래도 이왕 지구에 태어났는데 구석구석 다 밟아보고 죽고 싶으니까, 대륙별로 거점도시를 정해서 일하면서 살다가 주말이나 휴가때 그 대륙 여기저기를 여행하면서 사는 것. -- 나는 안성 시내에서 태어나고 자라다가 초등학교 1학년 때에 이미 시골인..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