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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성인ADHD

2. ADHD를 검색해 볼 수록 오히려 기대감에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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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ADHD의 특성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매체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개인의 기록임을 밝힙니다. 

 

ADHD를 가진 사랑스럽고 안타까운 금쪽이를 보고, 

나는 홀린 듯이 ADHD에 대해서 찾아보게 되었다. 

 

정보의 홍수 속을 한참 표류하다 내가 정착한 곳은 서울아산병원의 질환백과(링크)였다. 

여기에서 성인 ADHD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정리정돈을 못한다는 부분만 빼면 전부 다 나의 증상과 일치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깊은 부분은 마지막에 소개한 "성인 ADHD 환자에게 유용한 습관" 다섯가지였다. 

 

① 메모가 가능한 노트나 수첩, 스마트폰을 항시 휴대합니다.
② 주변에 휴지통과 정리함을 여러 개 배치합니다.
③ 열쇠, 전화기, 지갑 등의 물건을 담는 보관함을 항상 같은 위치에 두고 사용합니다.
④ 반복되는 실수를 파악하고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⑤ 주무를 수 있는 물건을 주머니에 항상 소지하면서 불안과 분노가 생길 때마다 이를 사용하여 감정을 조절합니다. 

 

놀랍게도 나는 이 다섯 가지를 자발적으로 실천해오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가 기특했다. 

이미 나는 내가 성인 ADHD라고 90% 정도 확신하고 있었고, 이 다섯가지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나의 신체적인 기능저하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발버둥친 내 노력의 증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리를 못하는 부분만이 나와 일치하지 않았던 점이지만, 내가 원래 정리를 잘 하던 사람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노력해서 나아진 부분이기 때문에 더 기분이 좋았다.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 - 성인 ADHD 증상

 

인생에서 나는 ADHD의 행동적 특성 때문에 굉장히 큰 손해를 보며 살았고, 가장 가까운 친구를 잃을 뻔 한 적도 여러 번이었고,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을 실망시킨 적도 셀 수 없이 많았고, 그때마다 깊은 우울감과 자괴감에 빠져 비교적 최근까지 자기 비하를 하며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금방 그만둘 지언정 끊임없이 시도해왔다.

사회에서 제 기능을 하는 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고, 그 결과로 가지게 된 습관들 이라는 점에서 나는 스스로를 굉장히 높이 평가했다. 나를 칭찬해 주고 싶었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고, 그래도 여지껏 잘 살아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치료 후기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 눈을 사로잡은 후기들은 거의 다 긍정적이었다. 

(검색 능력이 떨어질 수도, 내가 원래 대책없는 낙관주의자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공시생이었는데 집중이 잘 돼서 공부 효율이 올라 시험에 합격하고, 취업 준비가 잘 되고, 직장에서 업무 효율이 올라 평판이 좋아졌다는 등 약물치료를 하고 난 후 인생이 달라졌다는 식의 후기들에 깊이 빠져서 나는 머릿속의 희망 회로를 끝도 없이 돌리고 있었다.

 

과연 나는 얼마나 더 나은 사람이 될까? 달라진 능력으로는 내가 일을 얼만큼 더 잘 할 수 있게 될까? 승진 너무 빠르게 하는 거 아니야? 그럼 월급도 오를 테니까 그걸로 뭘 먹고 어디에 놀러갈까? 집을 살까? 한국에 살까 베를린에 살까? 수능을 망친 게 늘 불만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자기만족으로 수능공부를 다시 해서 좋은 대학교에 원서를 넣어 볼까? 합격하면 다녀야 하나? 아님 그냥 만족감으로 끝내야 하나? 독일어 공부는 할 생각도 없었는데 이제 시작하면 엄청 잘하게 되는 거 아니야? 그러면 독일어로 뮤지컬 공연 보러 갈 수 있겠다! 뭘 먼저 봐야하지? 부작용중에 식욕저하도 있던데, 갑자기 살 엄청 빠지는 거 아니야? 그럼 살이 막 쳐지게 되는 건가? 식욕 없어도 잘 챙겨 먹고 운동도 해야하는건가? 와 그럼 나 복근 생기려나? 복근생기면 사우나 가서 목욕해야지. 트로피컬 아일랜드도 비키니 입고 가야겠다!

이런 식의 망상들로 나는 이미 매우 들떠 있었다. 

 

무엇보다도 기분이 좋았던 점은, 

내게 결여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은 늘 해왔지만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를 몰랐는데

이제는 그 문제의 이름을 안다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성인ADHD가 맞기를 바랐다. 

 

문제를 안다면, 해결 방법을 찾기도 수월할 테니까. 

이게 가장 중요했다. 

 

의사선생님을 만나면 물어볼 것은 딱 두 가지였다. 

"제가 성인 ADHD가 맞나요? 만약 아니라면, 제 문제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 

 

그래서 나는 고민없이 집 근처 정신과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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