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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성인ADHD

1. ADHD를 알게 된 건, 매우 공교로웠다. (금쪽같은 내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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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ADHD의 특성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 많은 매체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개인의 기록임을 밝힙니다. 

 

11월 초, 한국에 오랜만에 방문했다. 

5주간 한국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이후 4주 동안은 휴가를 내서 노는 총 9주간의 일정이었다. 

 

나는 심리적으로 매우 안정된 상태였다. 

혼란하던 10대와 20대를 겪고 직장을 다니며 삶을 안정시키고 나니 나 자신을 좀 더 들여다 보게 된 덕에 30여년간 나를 괴롭히던 무기력함과 의지박약, 자기비하와 나태함, 열등감, 게으름 등을 나름대로 잘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30대가 되면서 좋던 싫던 나라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상태였다. 

게다가 한국에 갔을 때는 마침 큰 규모의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직후여서 당연히 내 자존감은 아주 높이 치솟아 있었다.

 

나는 내 삶에 매우 만족했고, 나의 매일은 진심으로 행복했으며, 더이상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열등감에 속이 쓰리지도 않고, 10대와 20대를 거치며 느꼈던 불안함과 혼돈으로부터 독립한, 나름대로 멋진 자아를 가지고 있는 30대 여성이라고 까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재택근무를 시작하자마자, 일하기가 너무 싫었고, 불안했고, 미루기 시작했고, 혼란스러웠고, 일을 미루는 내 자신이 싫어졌다. 

글로 풀어낼 수 없는 많은 고민과 잡생각을 한 결과, 나는 일하는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왕 한국에 왔으니 좀 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원래 일하던 책상 환경과 시간이 아니어서, 직전에 큰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한 후 약간은 쉬고 싶다는 보상심리가 합쳐져서 그런 거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고 그걸 믿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아주 틀리진 않았다. 

 

그러다가 친구들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결혼해서 배우자와 함께 살고 싶지만, 아이는 절대 낳지 않겠다는 생각을 중고등학교때부터 아주 착실하게 쌓아왔다. 

내 친구들 중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친구들은 둘 뿐인데, 이 친구들과는 스무 살 초반부터 육아에 대해서 끝장토론을 벌이곤 했었다. 

셋 다 20대 극초반부터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남자친구들을 만났고, 나는 중고등학교 학원선생님, 한 명은 유아교육과 졸업 후 유치원 선생님이었고, 한 명은 매우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갓 급식실을 벗어난 20대 초반의 햇병아리 여자애들은 결혼,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해서, 그리고 가족관계나 심리상태에 대해서 만날 때마다 아주 심도있게 이야기를 나누어 왔고, 다른 두 친구들과 달리 나는 줄곧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때의 엄마보단 많고, 아빠보단 적은 나이. 

 

지금도 나는, 내가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은 이유 100가지 정도는 가뿐히 글로 쓸 수 있다. 

그런데 내 친구들의 아이들은, 그 모든 논리와 이유를 깨부수고도 남을 만큼, 심하게 귀여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성적으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남는 결론은 아이를 낳지 않는게 제일이다. 

그런데도 지성체의 가장 상위에 있다는 인간이 여태 멸종하지 않은 이유는 정말 하잘것없었다. 그건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었다.  

귀여움이라니. 

귀여움은 인류의 희망이자 버팀목이라는, 기이한 깨달음이 나를 휩쓸었다. 

 

2살, 5살 여아인 친구들의 아이들을 만난 후부터 내 마음은 심하게 울렁댔다. 

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작은 인간을 만들어 인생의 행복을 아는 어른으로 키워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비록 열세였지만, 한 줌 남은 이성은 타협안을 제시했다. 

 

금쪽이를 보자. 

문제행동을 가진 아이들을 보고서도 인간이 사랑스럽고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진지하게 출산을 고려해 보자. 

 

그래서 나는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기 시작했다. 

깊게 생각하며 정주행할 생각으로 아예 1화부터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14화까지 정주행하면서 나는 더럽혀진 기분이었다. 

뭐랄까. 설명하긴 어렵지만 인류애 라는 것이 생긴 듯 했다.

아이든 부모든 저마다의 이유로 아픔을 가지고 있고, 외부적으로든 내면적으로든 그것을 치유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무언가 거대하고 고차원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고, 인간에 대한 사랑스러움과 연민의 감정이 마음 속 크게 자리잡게 되었다. 

이 깨달음은 지금도 유효하다. 나는 인간을 사랑스럽게 보게 되었다. 

 

그러나 금쪽같은 내새끼 15화를 보면서, 

나는 더 이상 출산이나 육아에 대해 생각할 수 없었다. 

ADHD를 가지고 있다는 아이가 나와 너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모든 초점은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고, 나는 미친듯이 ADHD에 대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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