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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성인ADHD

6. 부모님께 ADHD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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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고등학교 때 나는 엄마한테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고 얘기했었다.

당연히(?) 당시에 나는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고, 도대체 근본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내가 이모양인지 이해할 수 없고 답답했다.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주고 명쾌하게 답과 나아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인생에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시기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딸이 아무리 말해봤자 엄마는 화만 낼 뿐이었다.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대한민국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고, 남들은 다 알아서 다스리며 산다고. 정신과 같은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곳에 기어이 발을 들여 놔야겠냐고, 왜 그렇게 반사회적으로 살려고 기를 쓰냐고, 정신과 가면 기록에 남아서 취직도 못하고 손가락질 받는다고, 말같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말라는 식이었다. 

 

지금은 우리 모녀의 사이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아서 참 다행이지만,

당시 우리는 정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매 순간 사이가 틀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갈등이 극에 달아 나는 수능이 끝나고 가출해서 부모님과 절연을 했었다.)

 

당시 엄마의 반응은 내게 상처였지만, 벌써 십 년도 넘게 지난 지금의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다. 

정신과 진료 기록은 누구나 맘만 먹으면 볼 수 있을 것만 같고, 내가 문제없이 건강하게 낳아 놓은 큰 딸에게 정신질환이 있을리가 없고, 날 닮아 똑똑하게 낳아놨지만 그저 게으르고 목표의식이 없을 뿐인데, 철없이 땡깡이나 부리는 애가 어디서 또 뭔 소리를 들었는지 정신병원에 가고 싶다니.. 참 우리엄마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을 거다. 들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건 덤이고. 

 

우리 엄마도 나를 처음 키워봤고, 나도 처음 살아보는 거라.. 

당시엔 그냥 막연히 정신과라는 곳이 10대 여자애에게 찍을 낙인과 그로 인해 생길지도 모르는 인생의 불이익이 두려웠기 때문에 나는 고등학교때 문제를 인식하고도 정신과에 가보지 못했다. 

수능이 끝나고 가출을 하고 나서는 나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정신과에 갈 필요를 딱히 느끼지 못했다. 

집을 뛰쳐나가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독립한 후로는 하고 싶으면 했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렇게 살며 온갖 문제를 많이 겪었지만, 살고 싶은 대로 사는 데에 따르는 대가라고 여겼다. 

 

이번에 한국에 가서 옛날 사진을 많이 찍어와서 참 좋다. 진짜 예쁘다.

 

질풍노도의 10대와 20대를 겪고 난 후로 정말 운 좋게도 나의 ADHD적인 특성에 어찌보면 잘 맞는 직업을 찾아 대강 사람 구실은 하며 살다가 우연한 계기로 내가 ADHD 진단까지 받게 되어서 나는 부모님께 이야기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굉장히 고민했다. 같은 부모님 밑에서 자랐지만 나와는 또 다른 내 동생에게도 물어봤고, 동생은 말하지 말 것을 추천했다. 

 

결국 나는 말하지 않기로 결심을 굳혔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과연 이해하고 받아들이실지 모르겠다. 또다른 갈등의 시작이 될 것 같다.

십 년도 더 전에 이미 나는 정신과에 방문하는 것에서 부터 엄마와 큰 갈등을 겪었다. '정신과'에서 바로 연상되는 '정신병자'라는 단어가 주는 두려움과 거부감이 부모님 세대에서는 굉장히 크고, 내 배로 낳아 나를 닮았음에 틀림없는 자식이 잘못된 인간일 리가 없다고 믿고 싶은 방어기제도 큰 몫을 할 것 같다. ADHD는 의지력 없는 게으르고 한심한 것들이 만들어낸 믿음도 가지 않는 병명이라고도 생각하실 수도 있다. 모든 건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는 건데, 노력하기 싫으니까 어디서 이상한걸 주워듣고 옳다구나 하며 핑계로 써먹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나와 사이가 좋지 않던 시절의 우리 엄마라면 분명 이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우리 사이는 분명히 또 틀어질 것 같았다. 

 

2. ADHD는 뇌의 문제이고, 유전일 확률이 크다. 너무 걱정 하실까봐 걱정된다.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사소한 알러지만 있어도 잘 낳아주지 못하고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지 못한 당신 잘못이라며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모가 원죄를 짓고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닌데 부모로서, 특히 엄마로서의 죄책감이 쓸데없이 큰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나와 사이가 좋은 우리 엄마는 이렇게 자책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경우라면 부모님이 실제 문제의 크기보다 더 과하게 걱정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내가 오히려 부모님께 죄송스러워지고 상당히 피곤해지겠지. 

 

3. 엄마와 나는 서로 상극이고, 분명 엄마는 ADHD가 아니다. 

사실 이 이유가 가장 까다로웠는데, 엄마와 나는 정말 상극이다. 10대와 20대를 걸쳐 인생의 절반 이상을 엄마와 갈등을 겪으며 보내야 했던 이유는, 서툰 엄마와 서툰 딸이 서로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서로에게 동의받지 못한 기대를 버리지 못해서였다. 지금 엄마와 나는 의견이 달라도 서로에게 '그렇구나' 하며 웃어줄 수 있다. 그렇지만 이 평화의 시대는 온통 소리치고 울며 싸우고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면서 길고 고된 이해의 과정을 거친 끝에 도래했다. 그렇다면 엄마랑 이렇게 다른 나는 과연 어디서 왔을까? 나는 아빠를 닮았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서로 너무 달라서 이혼하셨다. 

 

부모님이 이혼하실 때에 내가 가장 괴로웠던 것은, 부모님이 서로를 헐뜯는 거였다.

서로 사랑해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함께 길러낸,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탓하며 악담을 했다. 그렇다면 그 둘이 합쳐진 나는 무엇인가, 존재론적인 회의감이 들면서 내면 저 깊은 곳의 근원적인 무언가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뱃속과 정신이 울렁거려 괴로워해야 했다. 아마 이혼가정이 아니더라도 부모님이 싸우는 것을 듣거나 목격한 사람들은 다들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내가 아빠를 닮아 그런 거라며 아빠를 원망하고 탓할까봐 무서웠다. 유전적일 확률이 있을 뿐이지 100%도 아니고 나는 아빠가 ADHD인지 아닌지 전혀 알 수가 없지만, 분노의 화살이 애꿎은 곳으로 날아가다 결국 나를 아프게 할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이야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보면 부모님을 믿지 못하고 도망치는 길이지만, 최소한 불필요한 갈등은 없을 것 같았다. 

 

돌이켜 보니, 내가 도망친 갈등은 필요한 갈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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