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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업무일지

210520 목요일 - 나는 성실한 걸까 게으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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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어땠더라

정신없이 바빠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아침회의부터 시작해서 일이 끊임없이 있었다. 

해오던 작업을 프리랜서에게 넘기기 전에 마무리하고, 다듬고, 피드백 받고 수정하는 등의 일을 했다. 

씨디는 바쁘면 프리랜서가 내일 오니 그냥 넘기라고 얘기해줬지만 왜였는지 그 순간에는 다른 할일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내가 시작한 일인데 내가 마무리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무려 150장에 달하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 일이었지만 작은 수정이 대부분이었기때문에 후딱 하고 끝내자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파일을 다 만들고 광고주에게 할 발표를 위해 프레젠테이션에 크기, 오와 열을 맞춰서 올리는 일은 또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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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는 구글 기반으로 모든 일을 하기 때문에 나 역시 구글 슬라이드를 써야 했는데, 인디자인이나 키노트에 익숙한 나에게 구글 슬라이드는 아직도 너무 구리고 능률도 떨어진다. 많은 부가기능들이 있지만 아직 부족한데다, 기본적인 UX가 키노트만큼 매끄럽고 깔끔하지 않기 때문에 속도도 느려지고 결과물도 확연히 덜 예쁘다. 그러나 압도적인 클라우드 코워킹의 장점 때문에 협업에는 여전히 좋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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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열심히 작업해서 전부 다 끝내고 프리랜서에게 인수인계할 설명과 파일 링크까지 만들고 나니, 벌써 오후 7시 30분이었다. 

'뭐 이정도면 선방했지, 아직도 밖은 해가 짱짱하니까 산책겸 나가서 저녁을 사와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뿌듯하게 이메일을 쓰는 중이었는데, 사내 메신저가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정말 정말 미안하지만, 내일 오전에 광고주 발표가 하나 있는데 프레젠테이션이 온통 중구난방으로 정신없으니 그걸 좀 다듬어달라는 요청이었다. 오리지널 아이디어 덱, 필름프로덕션 트리트먼트, 전략분석, 로케이션 매니지먼트, 스토리보드 등 5개의 각각 다른 회사와 팀에서 파워포인트, 키노트 등 다른 도구로 만들어진 프레젠테이션을 하나로 깔끕하게 합쳐야 하다 보니 스타일은 각각 다르고, 폰트의 사용도 다 다른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원래는 통일된 하나의 마스터 슬라이드를 공유해서 작업했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까지는, 내가 전부터 하던 일이 아니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200장이 넘는 슬라이드를 통일성있게 정리하고 예쁘게 다듬기 위해 내가 소환이 되었다. 그 순간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이번 주 내내 휴가를 간 사람들과 갑자기 몰아치는 일과 일정들 덕에 회사 전체가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 말 없이 승낙했다. 그리고 애초에 이 일을 준 프로젝트 매니저가 나를 써먹기 위해서 다른 프로젝트매니저와 싸워서 프리랜서를 고용하고 내 일을 넘기고 덜어주었기 때문에 나는 불평도 하기 애매했다. 그래도 그렇지 저녁 7시 30분에 오늘밤까지 끝내야 하는 200장의 슬라이드라니... 아무튼 그 프로젝트매니저는 연신 미안하다 도와달라는 말을 연발하며 내 일을 도울 주니어 두명을 붙여주었다.

 

일손이 부족한 탓에 두 명의 주니어는 아트디렉터가 아니라 카피라이터들이라는 막막한 상황에서 나는 차라리 혼자 일하고 싶었다. 애초에 뭘 설명하고 알려주는 것 보다 혼자 처리하는게 빠르니까. 그런데 내가 주니어 때에 일을 잘 설명해주지 않고 그냥 떠넘겨버리는 사람이나 설명하는게 더 오래 걸리니 혼자 하겠다는 사람이 가끔 있을 때 마다 무시받고 제외되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에 최대한 같이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고맙게도 그 두명이 엄청 열의가 있었고 뭐든지 말만 해달라고 방긋방긋 웃어서 그렇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주니어들에게 저녁먹고 10시까지 쉬라고 한 후에, 나도 저녁부터 먹고 나서 마스터 슬라이드와 그리드, 가이드라인들 부터 만들었다. 거기에 맞춰서 요소들을 배치시켜달라고 요청하고 1/5정도의 일을 분배한 후에 나는 방대한 이미지 레이아웃을 잡고 다듬었다. 구글 슬라이드를 보니 CD, Sr.AD, PM, Sr.Producer, AD, CW등 7명이 붙어서 개미굴 파듯이 작업하는 모습이 웃기기도 했다. 일하는 중간에 확인해 보니 카피라이터들이지만 그래도 구글 슬라이드고 대부분은 키노트나 파워포인트 등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작업 속도가 느렸다. 그래서 1차로 맡긴 일만 끝내고 자자고 얘기하고 마무리하니 벌써 12시 30분. 당연히 나는 잘 수 없었고, 그래도 맡은 일이니까 끝내고 자야지 생각하며 혼자서 개미처럼 집중해서 일을 하고 나니 새벽 4시였다. (이때까지도 CD는 중간중간 슬라이드에 들어와서 확인하고 수정하는 일을 계속하더라) 오전 11시에 광고주 발표였기 때문에 모든 일은 10시까지 마무리되어야 했고, 그래서 오전 8:30에 체크업 미팅이 잡혀 있었다. 모든 슬라이드를 함께 확인한 후에 혹시 모를 수정사항에 대비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대충 몇시간 눈을 붙이고 오전에 일어나 확인한 결과 모든 부분에서 오케이가 떨어졌고, 하루 휴가를 얻은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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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말 모르겠다. 

내가 과한 걸까? 

왜 남들은 잠자러 가는데 나는 혼자 그걸 붙잡고 새벽까지 일을 했을까.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는 일일까? 

 

나는 타고나길 뼛속부터 게으르고 관심없는 일에는 일말의 신경도 쓰지 않는 인간이다. 

아직까지 학생인 것도 아닌데 회사일을 할 때에도 열심히 하다가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아하고, 종종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면 할 수 있을 때 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마감기한을 앞두고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끝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오늘은, 3개월 면담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오랜만에 책임을 맡은 일이어서인지 정말 딴짓한번 안하고 열심히 일을 끝냈다. 뿌듯함도 있고, 약간의 허탈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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