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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내이야기

모교가 없어진다 - Miami Ad School Europe (Ham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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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졸업한 내 모교가 사라진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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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 학교는 웃긴 학교다. 

그러니까 일종의.. 포트폴리오 학교라고 보면 되나..? 

미국의 마이애미에서 광고 전문 포트폴리오 학교로 시작했기 때문에 학교 이름이 Miami Ad School이다. 

앞글자만 따면 MAS, 다들 마스라고 부른다. 

지금은 마이애미가 아닌 많은 곳에 학교들이 있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함부르크, 베를린, 마드리드, 상파울루, 토론토 등등 꽤 많다. 

 

총 2년 과정인데, 학위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2년을 수료했다는 Diploma 뿐. 

1년을 4분기로 나눠서 각 분기마다 신입생을 받는 식이다.

첫 1년은 Basecamp 라고 불리는 학교에서 4분기동안 수업을 듣는다. 

1분기당 10주 수업, 3주 방학을 총 네 번 반복한다. 

그리고 다음 1년동안은 전 세계로 인턴십을 떠난다. (물론 합격해야 하지만) 

마찬가지로 1분기당 10주 인턴십과 3주 방학. 

 

이런 식으로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교육을 시키고 인턴십을 보내주면서

취업을 하기 위한 포트폴리오를 쌓는 것이 목적인 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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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내가 다녔던 학교는 Miami Ad School Europe, a.k.a. MASE. 

그냥 마스 혹은 메이즈 라고 불렀었다. 

유럽에서는 가장 먼저 마스가 생긴 곳이라서, 야심차게 Europe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함부르크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함부르크 사람들은 자부심이 꽤 높은 편이다. 

함북에 학교가 생긴지 꽤 시간이 흐른 후에 베를린에 뒤늦게 분교가 생겼다. 

아무래도 독일에 위치해 있으면서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의 특성 때문인지 

베를린에서 꽤나 수요가 높았던 것 같다. 

 

한 학장이 함부르크와 베를린 학교 두 곳을 모두 관리했는데, 

당연히 그 학장은 함부르크 붙박이였고 베를린은 거의 가지 않고 사실상 거의 방치해놓는 식이라서 베를린 학생들의 원망이 자자했었다. 

베를린은 학교도 정말정말 작고, 시설도 후져서 나도 가보고 깜짝 놀랐었다. 

반면에 함부르크는 대학 캠퍼스들이 모여 있는 단지 안에 번듯한 3층짜리 건물을 단독으로 썼고,

추가로 지하실에는 도서관까지 있었다. 

 

지하실: 도서관

1층: 사진스튜디오 및 장비 보관함, 졸업식 등을 진행하는 강당, 소파와 자판기 등이 있는 라운지.

2층: 학교사무실들, 학장실, 강의실, 팀플 작업실들

3층: 책상, 소파, 냉장고가 모여 있는 도서관 열람실 같은 작업공간 + 졸업반 전용 휴게실과 작업실. 

 

옛날에는 산부인과였던 건물이라서 

심지어 이 건물이 산부인과였을 때 여기서 태어난 학생이 다니기도 했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졸업반 전용 공간을 참 좋아했었는데, 

엄청 넓은 공간을 졸업반들에게만 할당해줬기 때문에 

나는 졸업하기 직전 거기서 거의 먹고 자면서 졸업 준비를 했었다. 

2016년 겨울. 브로난도가 찍은 눈내린 학교 캠퍼스. 나는 안타깝게도 사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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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우리 학교가 없어진다니!!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고 Miami Ad School Europe은 남아 있을 거지만, 

베를린으로 통폐합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독일에 마스는 베를린이 유일해진다. 

 

사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코로나 때문에 모두가 비대면 수업을 한지 1년이 넘었고 함부르크의 임대료는 꽤 비싸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함부르크의 광고와는 다르게, 점점 더 국제적으로 변모해 가는 베를린 광고업계도 한 몫 했을 수도 있고, 

베를린 학교는 이미 공유사무실 같은 널찍한 공간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만 공간을 대여해서 쓰면 임대료도 아낄 수 있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십여년 간 학장 자리에 있었던 니클라스가 퇴임한지 이제 1년쯤 됐나..

이렇게 빠르게 파격적으로 변하다니. 

충격적이고 슬프다. 

 

이건 마치.. 

다른 도시로 학교를 가거나 직장을 잡아서 독립한 자식이, 

그래도 본가에는 내가 쓰던 방이 남아 있고 언제든 가서 쉬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부모님이 빈 방을 뭐하러 놀리냐며 새로운 용도의 방으로 꾸미거나 세를 줘 버리는 상황과 비슷하다. 

본가에 내 방이 없다니!!!

그럼 더이상 우리집이 아니라 그냥 부모님이 사시는 집이 되어 버리는 거다. 

 

베를린과 함부르크는 1시간 45분이면 갈 수 있는 아주 가까운 도시다. 

나는 함부르크에서 학교도 다니고 직장도 다니면서 거의 4년동안 살아서 

함부르크에 친구도 많고 함부르크를 제2의 고향이라 여길 정도로 애정이 각별하다.

그래서 베를린과 함부르크를 정말 많이 오가며 지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이제 함부르크에 가도 내가 다녔던 학교가 없다.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아쉽다.
제2의 고향에서 내게 가장 의미있는 장소 중 하나가 곧 없어진다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이상은님의 둥글게 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둥글게 모여 앉아 행복했던 작은 학교였는데.

베를린이면 몰라도 함부르크는
앞으로 내가 살며 나이가 점점 들어가도
언제든 다시 찾아오면 거의 그대로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곳이었는데.
마음이 정말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지만,
더 늦기 전에 마지막으로 학교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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