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로 오면서, 내 커피 세계관은 많이 바뀌고 확장되었다.
한국에서는 거의 아메리카노와 맥심 믹스커피만 주구장창 마셔댔고, 우유가 들어간 커피는 싫어했으며 크림이 올라칸 커피는 극혐했었다. 독일에 와서는 '아메리카노' 대신 'Kaffee Creme'을 파는 곳이 많아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 룽고 사이의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내가 살던 함부르크에는 평균적인 동네 커피의 맛이 너무 구렸다. 그래서 대안책으로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시작했고, 몰랐던 커피의 '풍미'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되면서 이때부터 편협했던 내 커피관을 벗어나 좀 더 다양한 커피맛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에스프레소, 코르타도 레체 이 레체, 플랫화이트 등으로 저변을 넓혀갔다. 그러고 나니 함부르크에 커피 맛있기로 유명한 카페들을 하나둘씩 정복해가는 맛과 새로운 카페를 뚫는 맛으로 짜릿하게 독일 커피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년 전 스페인령 테네리페 섬에서 일주일간 머물면서 그곳의 커피인 'Cortado'를 마셔봤는데, 코르타도는 정말 신세계였다. 우유들어간 커피를 싫어했었는데 이건 한입 마시자마자 너무너무너무 맛있었다! 고소한 우유맛과 새큼하면서 씁쓸한 에스프레소가 어우러져 입 속에서 미친듯한 향연을 펼치는게 아닌가. 환상적이었다.
함부르크로 돌아온 나는 함부르크의 코르타도 맛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매우 흡족한 코르타도 전용 단골 카페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아직 함부르크에 살면서 베를린에 놀러왔을 때 남자친구네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려고 하는데 심상치 않은 인상의 이탈리아인 가족이 내 앞에서 먼저 주문을 하고 있었다. 대화를 가만히 들어보니 그 가족은 "에스프레소 마키아토가 있으면 당연히 그걸 마셔야지. 그걸로 네 잔 통일해. 그리고 간식으로는 에그타르트를 먹자" 라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철석같이 믿기로 했다.
음식 좋아하는 나는, 처음에 독일에 와서 많이 당황했다.
물론 이 때는 독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맛집들도 섭렵하지 못했을 때라서, 첫 인상만 놓고 보자면.. 독일인들은 음식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전반적인 음식 질도 형편없고, 도대체 왜 이딴걸 먹는지 이해되지 않는 식당이 부지기수였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심지어 커피도 맛이 없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슬프게도 아직 유효하다.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다가 나처럼 맛있는 커피와 음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점점 대화할 일이 많아지고, 나는 내 나름의 독일 맛집 목록이 쌓여갔으며, 독일 식문화에 대해 가장 불평하기 좋은 상대는 이탈리아 친구들이라는 것도 터득했다. 이탈리아 친구들은 일반적으로 음식과 커피의 질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음식에 관심이 크지 않은 독일사람들과 맛없는 독일 음식에 치를 떤다. 그런데 이탈리안 가족이 독일 카페에 와서 당연하게 주문하는 커피와 간식이 있다면? 나는 당연히 그들을 신뢰해야 한다.
그렇게 나의 '베를린식 에스프레소 마키아토' 세상이 열렸다.
낯선 이탈리안 가족의 대화를 귀동냥으로 훔쳐 듣고 처음 주문해본 에스프레소 마키아토는 정말 맛있었다. 스페인의 코르타도와 함부르크의 코르타도를 능가하는 맛 까지는 아니지만, 애초에 커피 종류도 다르니까. 보통 에스프레소 마키아토는 에스프레소에 우유와 거품을 아주 살짝 점을 찍듯이 얹어 먹는 커피지만, 유럽에서는 도시별로 카페별로 우유 양이 다르다. 우유를 얼만큼 넣어줄지 묻는 카페도 많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베를린 카페에서 내어주는 에스프레소 마키아토는 우유 양이 좀 더 많아서 코르타도랑 비슷-하다.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에서는 정말 정석대로 주지만. 아무튼 나는 이곳을 계기로 다양한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마키아토와 코르타도를 많이 마셔봤고, 그 둘에 대해서는 커피맛을 어느정도 안다고 자부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베를린 카페 Mokofuk의 (내적)단골이 된 계기다.
왜 내적 단골이냐면.. 가서 인사만 해도 나를 기억하고 알아서 커피를 취향에 맞게 만들어 주시고 얘기도 종종 나누던 친절한 바리스타분이 얼마전 그만두시고 나도 예전만큼은 자주 가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아쉽지만, 그래도 그곳 커피는 여전히 맛있고 나는 여전히 그곳에 꽤 자주 간다.
베를린 Friedrichshain이라면, 혹은 Ostkreuz 나 Warschauer Straße 근처라면, 여기에 들러서 에스프레소 마키아토를 마셔보길 권하고 싶다. 토요일엔 청과시장이, 일요일엔 가구 벼룩시장이 열리는 Boxhagener Platz 바로 앞이기도 하고, 주변에 정말 맛집과 맛있는 카페가 널려 있는 곳이다. 커피를 사서 바로 앞 공원에서 날씨를 즐기며 마셔도 정말 좋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앞으로도 꾸준히 Friedrichshain, Kreuzberg, Prenzlauerberg 맛집과 카페에 대해서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를린은 정말 너무 좋은 곳이 많다. 내사랑 함부르크 맛집들도 사진이 있다면 종종 올려야겠다.
Mokofuk 구글맵으로 확인하기: goo.gl/maps/LsSWbXmLDnM4jeHT6
Mokofuk
★★★★★ · 커피숍/커피 전문점 · Grünberger Str. 75
www.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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