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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독일정보

코로나 락다운 때 독일에서 응급실 가기 - 항문농양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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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독일에서 큰 병원에 가려면 주치의가 있어야 빠르고 편한 것 같긴 하다.
주치의래봤자 별 건 아니고, 그냥 하우스아츠트, 우리나라로 치면 개인병원 정도?

남자친구가 엉덩이에 종기가 났다.
몇년 전에 갑자기 생겨서 개인병원에 갔는데 거기서는 수술할 수도 있지만 권하진 않고 일단 약으로 치료해보자고 했었다.
그리고 나니 거의 해매다 겨울철에 면역력이 떨어지면 같은 자리에서 종기가 올라왔다.
보통 한번 종기가 생기면 한 1-2주 정도 거동이 불편해지다가,
그 고름?이 부풀어 올라서 터지면 자연스럽게 낫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장장 두어달 동안이나 가라앉았다 부풀어올랐다를 반복하며 없어지지 않고 괴롭히는 것이었다.
참다못한 남자친구가 항문외과를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싹 다 전화를 돌렸다.
이번 참에 아예 수술을 받아서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결심이었다.
남자친구 말로는, 위치도 애매한게 항문은 아닌 엉덩이 어딘가라서 치루인지 치질인지 치핵인지도 아닌 것 같고,
항문농양이라는 건 도대체 어떤 건지 감도 안왔었다.

신기하게도 여기는 베를린이고, 상대방은 무려 의사인데도 영어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그마저도 개인병원이 아니고 좀 더 큰 병원들은 코로나때문에 공보험을 가진 신규 환자는 받질 않았다. (사보험은 예약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온라인으로 가장 빠르게 예약을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예약을 했고, 이번 주 화요일에 방문했다.
갔더니 또 의사소통 대실패.
독일에 살면서 독일어 못하는 우리가 죄인이긴 하다.
아무튼 독일어를 못하는 남자친구와 영어를 못하는 의사가 만나 소통이 안되다가
결국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통역을 부탁했다.


결과적으로 의사는 이런 종이를 써 주며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종이를 받아들고 집에 들러 간단한 입원 준비를 했다.
독일은 입원하면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고 친구가 얘기해줘서
세면도구, 잠옷, 핸드폰충전기, 손소독제, 속옷과 양말, 이어폰 등 배낭 하나에 간단히 짐을 싸서
저녁에 내가 퇴근하고 같이 종합병원(크랑켄하우스)에 갔다.

Vivantes Klinikum Friedrichshain.

Vivantes Klinikum Friedrichshain.
응급실은 Rettungsstelle 라는 것도 배웠다.
이 비반테스 클리니쿰은 베를린에서 가장 큰 사설병원이라고 한다.
분만으로 가장 유명한 병원이라고도 하고, 가보면 엄청 넓고 생각보다 예쁘고 고즈넉하다(?)
입구로 가면 이 응급실 표지판이 보이고, 표지판을 따라 조금 걸어서 응급실에 도착했다.

역시나 응급실 문은 폐쇄되어있고, 간호사 한 분이 지키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결국 코로나 때문에 같이 온 보호자는 함께 들어갈 수 없었다.
체온 측정을 한 후 남자친구 혼자 응급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4시간 동안 대기하면서 간단한 검사들을 하고, 또 기다렸다가 검사받고 반복했다.
결국 늦은 밤이 되고, 의사는 오늘 응급환자들 때문에 수술을 할 수 없게 됐으니
집에가서 잘 자고 내일 아침에 와서 수술을 하자고 했다.

그리하여 다음날인 수요일.
병원에 들어가서 또 대기하고 검사받고 반복했다.
남자친구의 농양은 500원 동전보다 약간 크다고 했고, 이 정도 크기면 작은 농양과 중간크기 농양 사이 어디쯤이라고 한다.
아무튼 수술해서 그 부분을 도려내기로 결정하고, 수면마취를 한 후 수술.
500원 동전보다 큰 크기가 중간도 안 되는 크기라니 놀라웠고,
농양 부위를 째고 고름을 뽑아낼 줄 알았는데 아예 도려내 버리는 수술방식이 또 한번 놀라웠다.

수술은 순조롭게 잘 진행이 되었고,
항문과 연결이 되어 있어야 치루인데 남자친구의 농양은 엉덩이이긴 하지만 항문과 연결되어있지는 않아서 치루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한다.
동그랗게 도려낸 부분을 며칠 열어놓았다가 다시 병원에 가서 경과를 본다고 한다.
이것도 역시 놀라웠다.
당연히 뭔가를 도려내건, 열건, 째건 간에 몸에 칼을 대면 꼬매주는 게 아니었나..?
이 대목에서 약간 상식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튼 수술이 끝나고 난 뒤 하룻밤을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았는데,
널찍하고 호화로운 1인실 병실에 있었고,
놀라울 정도로 그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액을 조절하거나 경과를 지켜보러 간호사만 가끔 들르고.
그 간호사한테 밖에 나가도 되냐, 담배를 피워도 되냐, 간식 좀 사먹어도 되냐고 물어봐도
대답은 그저 ‘응. 네가 원하는 대로 해’.

그래서 남자친구는 꽤 자유로운 입원생활을 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또 하나의 사건.

독일 사설 종합병원의 1인실과 병원밥.

이게 병원에서 주는 밥이었다.
저게 전식이나 후식이 아니고 본식이자 유일한 식사.
여기 분만으로 유명한 병원 아니었나??
잘 챙겨 먹어야 할 산모들과 수술 후 환자들이 이런 밥을 먹는다고..?

너무 충격적이어서 사진을 받아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수술경험이 있는 친구에게 사진을 공유했더니 그 친구 반응이 더 가관이었다.
“밥을 저렇게 잘 줬다고???”

독일에서 무지외반증 수술하고 회복실에서 받은 병원밥.

이게 그 친구가 받은 병원밥의 전부였다고 한다.
그 병원은 무지외반증 전문 병원이어서 회복실엔 다 같은 환자들 뿐이었는데,
사무실이 합쳐진 4인 병동이었고, 그마저도 병실이 아니라 회복실.
역시 코로나 발생 이후였기 때문에 원래는 하루 입원해야 하지만 친구 불러서 빨리 집에나 가라고 등 떠밀렸다고 한다.
잼도, 버터도 없이 그냥 바싹 구운 식빵 세 장에 물 한잔이 전부인 병원밥을 먹다 사레가 들린 친구는
다른 친구를 불러 얼른 집으로 갔다고.

그러고 보면 남자친구가 받은 병원밥은 정말 호텔식이다.
산모들이 저런 걸 먹나보다 독일은..
말도 안 된다.

아무튼
독일이고 공보험이었기 때문에
병원비나 수술비 같은 건 한 푼도 내지 않고
다음날 검진받고 쿨하게 집으로 퇴원.

곱씹어보며 정말 놀랍다고 하는 남자친구에게
우리가 그동안 독일에 낸 세금이 대체 얼마냐고 반문해 주었다.
(남자친구는 모르겠고, 나는 한달에 176만원 정도 세금을 낸다)

그래도 독일에 살면
세금을 낸 보람이 있고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지난 4년 10개월 동안 병원에 한번도 가지 않았지만,
남자친구도 농양 수술을 받았고 다른 친구도 양쪽 발 다 무지외반증 수술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병원비가 모두 무료인 걸 주변에서 눈으로 보고 있으니.

아무튼 코로나 시대에 독일에서 응급실 방문 후 항문농양 제거 수술 받은 후기 끝.
남자친구는 지금 잘 회복하고 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수술 5일차) 다른 사설 외과에 가서 경과를 검사받으라고 하는데
일단 병원 예약은 잡아 두었고, (수술받은 종합병원에서는 검진이 안된다고 아무 외과나 다른 병원을 가라고 했다.)
잘 아물고 있는지만 확인하면 되고, 아마 그 동그랗게 도려낸 부분에 새 살이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병원에선 한 일주일이면 일상생활과 약간의 운동이 가능하고
사람마다 다르지만 한달 정도면 거의 다 회복한다고 한다.

경과를 지켜보고 다시 후기를 올려야겠다.

수술 교훈:
몸이 아프면 미루거나 참지 말고 바로 병원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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