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새로운 필사 방법을 찾아서 필사의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친구들한테 사진을 찍어서 보냈더니 블로그에 쓰라고 하길래, 한 3년만에 글을 쓰게 되었다.
원래 문학을 너무 멀리하고 산다 싶으면 한 번씩 긴급수혈 용도로 좋아하는 책을 찾아 필사를 하곤 했는데,
지금은 몇주째 꽤나 꾸준히 영어 필사를 하고 있고, 사실 별건 아니지만 새로운 방법을 찾아서 공유하고 싶었다.
--
몇 주 전 어느 날, 나는 잊고 있던 연필을 찾았다.
무려 내가 좋아하는 스테틀러 노란 연필이 새 것으로 4자루나 있었다!!
사각사각 연필로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몇 년간 까맣게 잊고 살았던 나는 끓어오르는 흥분에 당장 연필부터 깎았다.
연필을 다 깎고 나니, 본격적으로 사각사각- 종이에 뭔가를 써야 하는데 뭘 쓸까 고민하던 차에
마침 책상 옆 거실테이블에 있던 1984를 집어들게 되었고, 책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그뿐이다.
--
어쨌든 신나게 책을 집어들고 여느 때처럼 필사를 하는 중에, 헷갈리는 문장이 등장했다.
문득 스치는 생각이 밀리의 서재였다.
요즘 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을 많이 업데이트 했던데!
찾아보니 역시나 1984도 있었다!
그때부터는 나도 종이책에서 손을 놓고 컴퓨터에서 북스 앱을 켰다.
사실 종이책을 필사하는 것은 독서대가 없는 나로서는 꽤 불편한 일이라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러면 이런 환경이 된다.
1. 독서대, 혹은 종이책 없이 필사를 위한 책상 공간을 널찍하게 확보한다.
2. 북스 앱을 켜서 고전문학을 하나 골라 띄워둔다.
3. 옆 화면에는 밀리의 서재 앱으로 같은 책을 한글로 띄워둔다.
4. 영어 책을 읽고, 한 문장을 읽고 외워서 공책에 적는다.
5. 적어도 한 단락을 다 필사한 후 모르는 단어를 찾아본다.
6. 이해가 되지 않거나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면, 같은 문단을 한글 책으로 읽는다.
이 방법에는 이러한 장점들이 있다.
1.
생각보다 쾌적하고 널찍한 환경은 필사의 지속성 측면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
종이책이나 전자책 단말기가 아무리 작아도 독서대가 없으면 필사할때 은근히 불편하고,
나처럼 소파나 침대에서 책읽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한테 독서대는 은근히 커다란 짐이다.
쾌적한 환경은, 가뜩이나 필사라는 사치스러운 행위에서 오는 자기만족감과 뿌듯함을 극대화시켜 준다.
그리고 이 장점은 4번에도 영향을 준다.
2.
북스 앱에서는 나온지 수십년 된 책들을 무료로 읽을 수 있다!
당연히 고전문학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4.
생각보다 힘들 수도 있고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인데,
문장을 외워서 적는 것은 문장의 구조를 이해하고 습득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달달 암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한 문장을 옮겨적는 동안 다시 책을 쳐다보지 않을 정도면 된다.
(이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리고 책상 위에 필사 공책이 있고 모니터 위에 필사할 책이 있다면,
공책 바로 옆에 책을 두는 것과 다르게 시선이 두 곳으로 분산되기 때문에
좀 더 집중해서 읽고, 좀 더 집중해서 적을 수 있게 된다.
6.
나는 영어공부하기 절대 좋지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영어로 책을 읽더라도, 어떤 문장이 묘하게 걸리적거리거나 완벽하게 매끄럽게 이해가 가지 않으면
그 책 자체에 흥미가 팍 식어버려서 곧 읽기를 그만두게 된다.
그럴 때 도움받을 수 있는 것이 한글책이다!
같은 문장을 영어로도 읽고 한글로도 읽으면 문장구조나 번역에 대한 감이 생기는 것은 덤이다.
나는 모든 문장을 읽지는 않고 헷갈리거나 번역이 궁금한 문장들만 찾아 읽는 편인데,
한 문단씩 끊어서 영어와 한글을 번갈아서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한 문장 씩 번갈아서 보는 것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
우선은 이 방법이 너무 편하고 꾸준히 흥미를 유지할 수 있어서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최소 서너 번은 필사를 하고 있다.
더군다나 나같은 ADHDer 에게 필사는 또 다른 효과가 있다.
사실 나는 영어공부 보다는 거의 명상처럼 필사를 하고 있다.
딴생각들이 넘쳐나고 도무지 가라앉지를 않을 때, 머릿속을 비워내고 차분해지는 용도로 필사를 한다.
명상을 잘 못 하는 편이라 명상보다 도움이 더 되는 느낌이다.
필사가 재미있어서 그런지 한번 하고 나면 마음이 많이 진정되어서,
밀린 일을 하기 전에 30분 정도 워밍업으로 필사를 하면 효과가 굉장히 좋다.
당연히 가끔은 필사 자체에 몰입해서 정신차려보니 몇 시간이 지나가서 당황하기도 하지만.
이상 필사 방법 추천 끝!
'외국에서 > 영어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30분필사] 노인과 바다 -1- (3) | 2022.02.22 |
---|